<소년 메리켄사쿠>, PUNX NOT DEAD cinema



젊었을 때는 어른들에게 무시받고,
나이들어서는 어린 애들에게 무시받고,
우리야말로 진짜 노 퓨처 아니야?
이제 와서 무슨 폼을 잡겠다는 거야.
오늘 무대에 서지 않으면 너희들을 죽여버릴지도 몰라.





우리 모두는 한때 대기권과 마찰하며 맹렬히 불타오르던 혜성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잘 알고 있다. 섹스피스톨스의 자니 로튼이 '우린 뭔가에 속고 있는 것 같아'라고 중얼거렸던 전미 투어 이래로, 우리는 펑크의 놀라운 폭발 뒤에 어른거리는 노회한 펑크 락커들의 그림자를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밝게 빛날수록 암흑은 깊어지리라. 시드 비셔스처럼 죽거나, 자니 로튼이 아닌 존 라이든이 되어 살아남거나, 스물다섯 이후의 펑크 락커의 삶은 둘 중 하나다.

중간계급 여대생들의 여가를 위한 시크한 카탈로그 혹은 원나잇의 메카 정도로 전락한 홍대씬도 초기엔 반란과 전복의 수도였던 적이 있었다. 온갖 실험과 미친 하이브리드가 횡행했고 격렬한 분노가 거리를 뒤덮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소위 '조선펑크'가 있었음을 잊을 수는 없다. '맨 땅에 헤딩'하고, '사정없이 사정하'며, '힘차게 맹진하여 골로' 가자던 그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펑크의 죽음은 장르나 트렌드의 생멸이 아니라 '미래'와 '내일'의 존부에 달려있다. 오늘 기타를 부숴도 내일이 없다면 그저 짜릿할 따름. 내일 공연과 다음 스케쥴, (어른스러운) 책임을 생각하는 순간 펑크는 죽는다. 지구에 부딪힌 다음을 생각한다면 그 누가 '지구를 박살내자'며 달려들 것인가. 따라서 펑크는 찰나적이며 시간적인 예술이다.  

<소년 메리켄사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뻔뻔스럽게 외치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철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펑크 락커다. 이토록 희망적인 이야기가 또 있을까? 오늘이 있음을 말하는 자들은 결국 늙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좆같고, 오늘은 언제든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펑크는 죽지 않는다. 이유 따윈 개나 줘라. 힘차게 맹진하여 골로 가자! 
fuck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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