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렇다 치자. 그러나 거꾸로, 진리도 철학을 포기했을까? 예술은 물론 관점의 재구성이지만 구체적 현실에서 예술적 행동은 몇 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되묻는다. 관점주의 자체의 관점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즉, 추상과 구체, 혹은 외부와 내부에 동일한 관점주의가 적용된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진부한 회의주의가 될 것이고, 다른 차원의 관점주의가 적용된다면 그것이 왜 다른 차원으로 나뉘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것은 이미 관점주의가 아니다. 결국 이 그럴듯한 충고는 스스로 어떤 지평을 내재하고 있는 관념적 허구에 불과하다. 지젝이 말한 '척도의 척도성'이란 이런 것이다.
그는 철학의 임무가 서술discription에서 해석interpretation으로 변모했다고 말한다. 잠깐. 해석이라니.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에서 지금까지 철학자들이 해왔 '었었었었' 다던 그것 말인가. 역시, 트렌드는 돌고 돌아야 제 맛이다. 두 세기는 거뜬히 뛰어넘는 레트로. 이것이야말로 진짜 간지다.
이래서 사르트르 형님께서 선견으로 지명하야 말씀하셨나 보다. 맑스를 극복했다는 시도들은 모두 맑스 이전의 관념의 재탕에 불과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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