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book

물론 직업이 아닌 소설쓰기도 있을 터다. 그러나 '직업'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중에 자세를 고쳐앉고, 허리를 곧게 펴고, 대충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 가령 '직업으로서의 게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어린 시절 자주 가던 피씨방에 가서 왁자지껄 떠들어가며 하는 게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는다. 이를테면, 먹고사는 일의 엄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겸손하지만 배짱있고, 크게 뭔가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면서도 기성체제에 굴종하지 않은, '반항의 시대'를 살아남은 사람이 소설쓰기를 직업으로 삼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35년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성실한 생활인 하루키와, 생활의 일부가 된 글쓰기의 풍광을 안내하는 일종의 직업설명서다.

나름의 재능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운이 좋았다. 직업으로서의 '입장권'을 손에 쥔 뒤에는 이 직업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면밀하게 계획하고 장기전에 대비했다. 먹고사는 일의 엄중함과 일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 놓인 절묘한 균형감각은 둘째 치고, 사랑하는 일을 통해 먹고 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적어도, '어떤 일'을 통해 '먹고 살려면', '어떤 일'은 물론이고 '사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통제권 안에 두어야 한다. 통제는 기실 가장 중요한 문제다. 통제하지 못한다면 일에 삶이 잠식되거나, 삶이 일에 집어먹히고 만다.

하루키는 자신의 삶에 규칙성을 이식했고 달리기를 통해 일상의 부산물을 덜어냈다. 그렇게 35년동안  자기 안에 소설의 세계를 가꾸어나갔고, 이제 그 세계는 하나의 대륙이 되었다. 성실히 달린 사람에게 얼마나 뛰었느냐고 묻는 것은 실례다. 멈추지 않고 달렸다는 사실이 직업인으로서의 최고의 영예일 테니.

끝으로 개인적인 감상을 몇글자 더한다. 이제 '직업으로서의 무엇'은 고사하고 '직업으로서의 엑셀', '직업으로서의 회사원' 등 직업이 아니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 하고싶지 않은 - 일들만 남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 안으로 모험을 떠난 사람의 일대기가 부럽기 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기왕 삶의 무게에 짓눌릴 바에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짓눌리고 싶다는 변태 같은 생각도, 아직도 철이 없다는 얘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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