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 처음 들어왔을 때 피씨방마다 가득 들어앉아 담배 연기를 뿜어대던 아저씨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들은 달리 갈 곳도 만날 이도 없었던 거다. 자학과 우울도 생을 실감하는 한 방편일텐데 그것도 다 기력이 있어야 하는 일인 듯.
1학년 때 h와 그의 하숙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그가 커트 코베인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rape me와 smells의 전주가 비슷해서 방송 관계자들 앞에선 smells를 연주하는 척 하다가 rape me를 불러제꼈다던가. 그땐 과방이든 하숙집이든 어딜 가나 싸구려 기타가 굴러다니고 있었으니 막 대학에 들어온 어린 애들이 대화의 소재로 삼기에 커트 코베인 만한 게 없었다. 아직 90년대적인 영웅이 먹어주던 때였으니까. h는 입에 막걸리병을 물고 rape me 리프를 능숙하게 쳐냈다. 당시 중고 스윙 기타를 처음 장만해 smells를 연습하던 내겐 그런 그가 초절의 고수처럼 느껴졌다. 사실 별로 차이도 없는데 말이지.
너덜거릴 정도로 찢어진 청바지를 트레이드 마크로 단답형의 말투와 쏘아붙이는 눈빛을 무기로 제 머리를 치며 rape me를 외치던 반항적인 기타리스트 h는, 스쿨밴드를 거쳐 정말 밴드를 하는가 싶더니 전역 후 고시를 보겠다며 기타 대신 두꺼운 책을 들고 나타났다. 노래대로 되어가는 건가. 그런데 그것도 벌써 오래 전 일, 군대 가기 전 밤 새 줄줄 눈물 흘리며 읽었던 책을 다시 보니 도무지 그때 같은 건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음악 따위 관심 없어.
개자식. 존나 잘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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